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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보다 더 중국을 사랑한 펄벅, 그녀의 눈으로 그려진 <양마담과 세딸> by 간이역

북경의 세 딸
펄 벅 지음, 이은정 옮김 / 길산
 

  과거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중국이 혼란을 겪는 시기가 있었다. 농민의 아들이었던 모택동이 이 문화대혁명의 핵심이었는데 이는 과거의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그 지난날의 것들 때문에 자신들이 지금 세계  열강들에게 뒤쳐졌다고 생각하며 모든 걸 부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는 문을 닫고 지식인 보다는 농민과 노동자들이 더 중요한 존재로 이 시기에는 여겨졌다. 중국의 공산주의는 바로 그 문화대혁명이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바로 그 역사적인 사건이 이 책의 배경이다.

  세 명의 딸을 미국에서 키우고 있던 양마담과 그 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중국인이기에 어쩔 수 없는 비극이었지만 그 비극성을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적어도 양마담처럼 그 어렵던 시대에도 커다란 음식점을 운영할 수 있고 호화로운 생활을 계속 해 나갈 수 있었다면 굳이 중국에 남아있을 필요가 있었나는 의구심이 떠오른다. 그것이 저들이 가지고 있는 저들만의 애국심인가.

  결국 문화대혁명 시절의 양마담과 그 후의 세 딸들의 횡보는 다르다. 문화혁명 시절의 양마담은 그 혁명의 주체였으나 그녀의 세 딸들은 그 후의 중국인 즉, 문화혁명 이후 유학을 간 후 세월이, 흐름이 변한 중국을 접해야 했기에 세 딸들이 모르는 그런 세계로서의 중국을 그녀들은 겪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중국을 그레이스는 선택했어야 했을까. 이것에 대한 기본적인 전제는 물론 중국이라는 조국을 가진 사람의 애국심을 말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그것보다는 펄벅의 보다 개인의 사심이 더 깊다고 말해야 옳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실재로 이 당시 중국은 미국을 적으로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양마담과 그레이스를 또 그 주변이들을 따뜻하게 그리고 있기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중국행을 혹은 중국에 계속 남는 것을 택했음을 그녀가 독자들에게 계속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중국을 사랑했기에 중국이 그녀의 조국인 미국을 증오해도 그들을 따뜻하게 볼 수밖에 없었으며 양마담이 죽어도 조국에서 죽기를 바라는 그러면서도 둘째 머시의 아들인 그 손자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을 때(머시는 중국으로 귀향했다가 그 문화혁명에 염증을 느낌과 동시에 남편을 잃었기에 이모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게 된다.) 슬퍼하는 모습 또한 연민의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중국을 안타깝게 바라보았고 그 중국을 그렇게 짝사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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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샹화 2008/03/16 00:30 # 답글

    펄벅 여사의 글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기에 당시 중학생때 처음 접한 그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충격적이었죠.
    중국정부에서 그녀의 책을 중국에 낼 수 없을 만큼 참혹한 묘사. 어쩌면 그녀는 지금의 중국인들보다도 중국을 더 잘 알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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