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김영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조금 색다른 여행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뛰어넘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여행의 핵심은 지금 나는 여기에 있지만 마치 그곳을 내가 발바닥 아프게 돌아다니는 느낌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할까.
아마도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장담한다. 그리고 타임머신은 사실 타임 패러독스를 위배하기 때문에 있다고 해도 그 다른 시간에 내가 도착하여 돌아다니는 행위는 할 수도 없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과거의 나 혹은 나와 관련된 그 모든 미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타임머신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속한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또 이 같은 시간에 나는 여기에 있으면서 다른 곳에 가 있으려면 그런 방법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사람들은 그걸 바로 책이라는 것을 통해 그것을 실현시켰다.
나는 프랑스에 가본 적이 없다. 그리고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서 모른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프랑스 말을 배웠지만 그것도 어떻게 읽을 줄만 기억할 뿐 불어에 대한 기억은 너무 단편적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프랑스가 어떤 나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과연 그곳은 19세기 예술의 전성시대를 구가하던 곳이기만 한 것일까.
우리는 프랑스를 예술과 유행의 중심지로 생각한다. 그것은 어쩌면 이 '루브르'와 '오르세' 라는 프랑스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이 박물관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물론 프랑스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이 루브르와 오르세 라는 이 예술 박물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박물관에 관련된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이라는 책을 통달했다고 해도 그곳에 가 보지 않는 한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간접 경험을 통해 그곳의 사정을 좀 더 객관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지은이가 생각하는 것을 한번 더 깔대기로 여과시켜 그 정보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 때 나는 그곳에 없지만 마치 지은이가 이 박물관을 가서 지켜봤던 그 시점으로 나 역시 돌아가 그와 같이 그림들을 살펴보며 그와 동조를 하거나 그의 의견에 비판을 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는 때가 오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림이라는 것은 문자 이전 시대부터 인류가 벽에 그날 사냥 계획을 세우면서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기에 언어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간혹 있더라도 그림은 한두 번 정도 살펴보면 그 그림을 그리려는 화가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역사는 차이점이 있지만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의 시대가 지나고 인상주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의 그 수많은 화가들이 자신들의 창작품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않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갔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다행히 이 책의 지은이의 말처럼 나는 길을 잃지 않고 지은이와 같이 그 예술 박물관을 쭉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 속에서 하나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 역사를 보면 다시 퇴행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즉, 인상주의 화가가 과거의 고전풍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점과 고흐나 고갱이 일본의 도자기 겉표지였던 그림의 화풍을 보고 그 영향으로 다시 또 그들의 역사에 과거에서나 유행했던 그 고전풍을 고집했던 그 모습에서 역사는 발전만이 아닌 퇴행을 같이 반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세계에서도 유행이 과거의 것이 10년 주기로 다시 살아나는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이 책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에서 나는 그들, 그 시대의 화가들의 치열했던 삶과 땀을 느끼고 이 책을 덮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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